[ 개발자로 일한다는 것 ] - 100621

나는 과연 팔십, 구십이 넘어 노인이 되었을 때에도, 지금처럼 개발자의 일을 하면서 지낼 수 있을까?

여기서 내가 말하는 개발자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이다. 다른 연구, 개발을 진행하는 일,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일들은 많이 있지만, 개발자로서 하는 일만큼 가장 빠르게 주위 환경이 변하는 일이 있을까? 한 가지를 배워서 죽기 전까지 그 기술만 가지고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일도 있겠지만, 정반대로 개발자로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배우고 익혀야 한다. 만들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항상 최신의 기술과 방법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한 마디로 피곤한 일이다. 이만큼 좋은 자리를 만들어 놓았으니, 이제 계속해서 주어지는 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할 수 없다. 가만히 있는 것, 현상 유지 자체가 도태로 이끌어지는 일, 직업이다.

사람마다 개발 기간의 운용 방법이 다들 다르겠지만, 나는 보통 이런 시간 분배를 하는 것 같다. 100 이라는 개발 기간이 주어졌다. 10 이라는 시간은 일과 관련된 이런저런 기술을들 찾아보고 실험해본다. 10 이라는 시간은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지낸다. 아마 70 정도의 시간은 생각을 하고, 머릿속에 그림을 그린다. 생각하다가 머릿속에서 스택(stack)이 모자르면 가끔 종이를 사용한다. 마지막 10 정도의 시간은 실제 코딩을 한다. 그 짧은 시간은 머릿속의 생각들을 구체화하는 시간인데, 타이핑 속도가 생각이 나오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도 있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한 면도 있지만, 나는 생각하는 시간이 가장 긴 편이다.

내가 이 일에서 손을 아직도 놓지 않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항상 새로운 것을 접하는게 즐겁고, 며칠이고 몇주간이고 생각에 잠겼다가 코드로 쏟아놓는 그 짧은 시간이 통쾌하다.

이렇게 오늘도 나는 compile 하고 있다. 아마도 몇십년 뒤에도 "이렇게 아직도 나는 compile 하고 있다." 라고 쓸 수 있지 않을까.

(처음에는 제목을 "개발자로 살아간다는 것"이라고 정했다가, "개발자로 일한다는 것"으로 바꾸었다. 일과 생활은 별개의 범주로 남기고 싶었다 OTL)



lono.pe.kr from 2001.04.24 by l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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