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 위 단상 ] - 081218



약 4년쯤 전에 혼자서 유럽에 다녀올 때의 이야기다. 처음으로 장거리 노선의 비행기를 타고 여행에 나섰다. 그것도 혼자서 비행기 티켓만 들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로. 참으로 무모하고 신선하고 겁 던 도전이었다고나 할까. 아직도 생생한 기억 한 시간 지연하여 출발한 KE927 로마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10시간쯤 지났을까, 12시간쯤 지났을까, 한번도 보지 못했던 하늘에서의 일몰을 바라봤던 적이 있다. 피곤하고 졸렸지만 그 파란색과 주황색 빛이 만나는 그라데이션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버전의 홈페이지의 가장 초창기에 포스팅한 곳에 그 사진도 있기도 하다. [ 옛날 흑백 사진 링크 ]

그 이후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 홈페이지가 리뉴얼될 타이밍부터, 유럽여행을 다녀온 후부터 지금까지 4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여러 계기로 비행기도 참으로 많이 타보게 되었고, 아름다운 것들도 많이 보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4년 전 이탈리아 서쪽 바닷가 위로 보이는 수평선에서의 일몰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지금 이 순간, 처음 느꼈던 그 아름다움과 설레임이 다시 느껴진다.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서유럽 대륙의 위로 희미하게 보이는 일몰의 아름다움.

생각해보면 2001년에 홈페이지를 처음으로 만든 이후로 다양한 생각과 가십거리, 단순한 일기와 쓸데없는 단편들로 홈페이지를 가득 채웠었다. 그것도 장문의 글로 매우 잦은 빈도로. 요새는 무슨 일이 그렇게 바빴던 것일까 일기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생각날 때 마다 올리는 관심없는 블로그 같은 포스팅? 그래도 의미 있는 기록들을 남기려고 하지만 그때에 비하면 너무 부끄럽다. "생각의 시간" 이 부족했던 것일까. 펜으로 쓰던 편지, 펜으로 쓰던 책, 키보드로 쓰던 일기. 잊혀져 버렸다.

오랜만에 덜 바쁜 비행기에서의 시간을 보내면서 참으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생각의 시간" 의도하지 않게 주어져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 고등학교 졸업 이후 인생의 전환점으로 생각되는 몇 번의 순간이 있었는데, 곧 있을지도 모르는 가장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이 내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생각이 더 많은가 보다. 덕분에 하늘과 구름 그 주변의 모든 아름다운 빛을 다시 바라보게 되고 왠지 뿌듯하기도 하다.

얼마 전 가을의 일이다. 아주 밤 늦게, 새벽인가? 그믐달에 가까운 달이 땅바닥에 붙어 있는데, 그 달의 빛깔이 내가 어려서부터 봐왔던 달 중에서 가장 붉으스름한 모습이었다. 붉은 달, Bad Moon, 불길한 달로 연상되어지는 머릿속. 복잡한 머릿속에서 자연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은 잊혀졌었다. 불과 몇주전 조금 이른 퇴근 길에 또 우연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원없이 밝은 보름달과 함께 주변에 보이는 몇 개의 밝은 별 아니면 위성일지도 모르는 2개의 물체. 그날 밤 늦게 뉴스를 보다보니 수십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행성이 3개 이상 일직선으로 배치되었던 순간이었단다. 지구와 금성, 목성이 한 라인에 있고, 더군다나 지구의 위성 달까지 모두 내 눈앞 손가락 한뼘 안에 들어왔다. 다음은 2050년 쯤이라고 하던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퇴근 시간 차이에 기인한 자연 현상에 대한 관찰 변화? 라고 하기엔 웃기고, 기분에 따라 맘에 들고 맘에 안 들던 자연의 아름다움. 생각해보면 참 웃기다. 그렇게 긴 시간의 차이는 아니었는데, 지금 바라보니 먼 옛날인 것 같고, 처한 상황도 많이 바뀐 것 없고, 왜 갑자기 똑 같은 달로 다른 느낌을 받았는지에 대해 말을 꺼냈는지 모르겠다. 유럽 상공에서의 일몰에 대한 감흥의 변화를 비유하고 싶었던 것일까. 자연 현상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껴봤다는 걸 뽑내보고 싶었던 것인가 OTL

- 이번에 사진은 못 찍어서 옛날꺼 재탕-_-a


이희승 : 왠지 답글도 A4 꽉꽉 채워서 달아야 될 거 같은데ㅋ (0812190301) x
lono : 원하시면 input 대신에 textarea 로 제공해드리겠습니다 ... -_-a (0812190336) x
likeblue : 음.. 글자가 많아서 읽기 불편해;_; 근데 댓글단 시간 뜨는 폰트 나만 이상하게 보이나?-_= 뭉개진거 같아보여서.. (0812260815) x
lono : transparent 속성 있는 레이어에 작은 폰트 썼더니 저렇게 나오는 듯, 바꿀까나. (0812271051) x
lono.pe.kr from 2001.04.24 by l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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